아이스크림의 전통과 현대적 변화
모로코는 민트티와 디저트 문화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본래 모로코의 단맛은 생과일, 말린 과일, 아몬드와 같은 견과류, 그리고 꿀과 오렌지 블로섬 워터(오렌지꽃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이 본격적으로 도시의 일상 속에 들어온 것은 관광산업이 급성장하고 유럽(특히 프랑스·이탈리아)과의 교류가 촘촘해진 20세기 후반 이후입니다
라바트, 카사블랑카, 마라케시 같은 대도시에는 프랑스식 글라세와 이탈리아식 젤라토가 동시에 뿌리내렸고, 여기에 모로코 전통 재료가 더해져 독특한 ‘모로코식 하이브리드’가 탄생했습니다
민트, 장미수, 오렌지 블로섬, 대추야자, 아몬드 페이스트, 심지어 낙타 우유까지—이 모든 재료는 모로코의 기후·농업·유목 문화의 층위를 아이스크림이라는 매체로 번역해 줍니다
관광객이 붐비는 제마 엘프나 광장 인근의 골목에서는 수제 아이스크림 가게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낮에는 30℃를 훌쩍 넘는 더위가 지속되는 날이 잦아, 아이스크림은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체온을 식혀 주는 ‘생활 필수품’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모로코의 전통 디저트(브리와트, 가젤 혼, 세파 등)가 가진 향신료·꽃수의 향이 아이스크림과 놀라울 만큼 잘 어울린다는 사실입니다
아몬드와 오렌지 블로섬의 조합은 고소함과 꽃향의 섬세한 균형을 이루고, 장미수와 피스타치오는 로맨틱한 향미를 남깁니다. 이러한 맛의 결혼은 ‘달콤함=중후함’이라는 인식을 넘어, 산뜻하지만 깊은 여운을 선사합니다
도시화와 함께 생긴 대형 쇼핑몰의 글로벌 체인들도 존재하지만, 지역 소상공인의 수제 젤라토 숍은 창업 허들이 상대적으로 낮아 청년층의 진입이 활발합니다
레시피는 유튜브와 SNS를 통해 빠르게 공유되고, 현지 시장에서 구한 신선한 허브와 과일, 견과류를 활용해 ‘오늘 만든 맛’을 내세우는 가게가 늘었습니다
인근 수크에서 바로 사 온 민트와 레몬 제스트, 향긋한 사프란을 소량 사용해 풍미를 끌어올리는 곳도 있습니다. 덕분에 같은 ‘민트 아이스크림’이라도 각 가게가 표정이 다릅니다
이는 대량 표준화보다 ‘장인성’과 ‘지역성’을 중시하는 최근 디저트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한편 유제품 수급의 현실도 맛의 지형을 바꿉니다
소·염소 우유뿐 아니라 남부·사하라 인근에서는 낙타 우유가 비교적 친숙한 재료로 쓰이며, 특유의 깨끗하고 담백한 고형감 덕분에 우유 기반 아이스크림과는 다른 질감을 보여 줍니다
외부 방문객에게는 호기심을, 현지인에게는 정체성을 환기하는 요소죠. 결국 모로코 아이스크림의 현재는 ‘전통 재료 × 유럽식 기술 × 지역 창업’의 삼각 구도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셋이 유연하게 섞이며, 계절·도시·가게마다 조금씩 다른 개성을 만듭니다
모로코의 대표적인 아이스크림 맛과 재료
① 민트 — 모로코 하면 떠오르는 것이 민트티인 만큼, 민트 아이스크림의 존재감은 독보적입니다 생민트를 설탕 시럽에 살짝 데우거나 콜드 인퓨전으로 우려 냄새를 정리하고, 레몬 제스트를 더해 상쾌함을 극대화합니다 초콜릿 칩을 곁들이면 쌀쌀한 밤 공기 속 민트티의 기분 좋은 쌉싸름함과 달큰함이 어우러진 맛이 됩니다
② 대추야자 — 남부 지역과 오아시스의 일상 식재료인 대추야자는 농밀한 당도와 캐러멜 같은 깊이를 제공합니다 씨를 빼고 퓌레로 만들어 베이스에 섞으면 설탕 사용을 줄여도 충분한 단맛을 확보할 수 있고, 시나몬·카르다몸과 궁합이 좋습니다. 메즈굴 품종처럼 단단하고 당도가 높은 품종을 쓰면 풍미가 또렷해집니다
③ 장미수 & 오렌지 블로섬 워터 — 페즈와 메크네스 일대에서 전통적으로 쓰이는 꽃수는 아이스크림에 ‘향의 층’을 만듭니다 장미수는 우아하고 둥근 꽃향, 오렌지 블로섬은 밝고 화사한 시트러스 향을 더합니다 과하면 비누향으로 느껴질 수 있어, 보통은 몇 방울 단위로 정밀하게 조절합니다 피스타치오·아몬드와 특히 잘 어울립니다
④ 아몬드·피스타치오 — 고소한 너트류는 모로코 디저트의 알토란입니다 설탕 시럽에 졸인 아몬드를 곱게 갈아 프랄린 페이스트를 만들어 베이스에 풀면, 혀에 감기는 밀도와 구운 향이 살아납니다 피스타치오는 장미수와 짝을 이루면 레어하지만 매혹적인 조화를 만들어 냅니다
⑤ 감귤·석류·무화과 — 지중해성 기후가 키운 과일들은 샤베트(소르베) 스타일로 빛을 발합니다 카사블랑카 해풍과 잘 익은 발렌시아 오렌지의 조합은 쨍한 산미와 부드러운 단맛을 동시에 주며, 석류는 씨앗의 타닌감 덕분에 입안이 깨끗하게 마무리됩니다 무화과는 우유 베이스와 만나 잼 같은 단정한 달콤함을 냅니다
⑥ 사프란·카르다몸·시나몬 — 향신료는 ‘모로코다움’을 결정짓는 비밀 병기입니다. 사프란은 미량만으로도 색과 향을 바꾸고, 카르다몸은 시트러스 계열 과일과 놀랍도록 잘 맞습니다. 시나몬은 대추야자·아몬드와 함께 캐릭터를 또렷하게 세웁니다
아이스크림 문화와 현재 나라 상황의 연결
모로코의 경제는 관광·농업·제조·서비스업의 복합 구조로 움직입니다 팬데믹 이후 관광이 점진적으로 회복되고, 유럽과의 교역이 늘면서 대도시 상권에 활기가 돌아왔습니다
2023~2025년 사이에는 고물가와 가뭄 등 변수가 있었지만, 도시 기반 시설 투자와 항만·물류 개선이 이어지며 소비 회복세가 관측됩니다
이런 국면에서 아이스크림은 ‘작은 사치’이자 ‘빠른 만족’을 주는 품목으로 수요 탄력성이 비교적 높게 유지됩니다 가격대가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데다, SNS에 공유하기 좋은 시각적 매력이 있어 젊은 층의 소비가 꾸준합니다
청년 실업과 지역 간 격차는 여전히 과제입니다. 그러나 소규모 수제 아이스크림 숍은 비교적 작은 초기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고, 지역 농산물(감귤, 아몬드, 허브)을 수급해 지역 순환 경제를 촉진한다는 점에서 정책·민간 차원의 관심을 받습니다
팝업 스토어나 주말 마켓에서 시작해 상설 매장으로 확장하는 사례도 눈에 띕니다 관광지에서는 ‘민트티 아이스크림’, ‘사하라 대추야자 젤라토’처럼 스토리텔링이 분명한 메뉴가 기념품 역할까지 겸하며 체류 지출을 늘리는 효과를 냅니다
기후 변화는 도전이자 기회입니다 가뭄과 물 스트레스가 농업 생산성에 영향을 주면서 원재료 가격이 오르기도 하지만, 동시에 ‘로컬·제철·저당’ 같은 건강 지향 트렌드가 부상합니다
설탕을 줄이고 대추야자나 꿀로 단맛을 보완하거나, 유당 민감 소비자를 위해 코코넛 밀크·아몬드 밀크 소르베를 개발하는 등 레시피 혁신이 활발합니다
낙타 우유 파우더를 활용해 저장·물류 리스크를 줄이는 시도도 의미가 큽니다. 이는 사막 인접 지역의 식문화 정체성과 지속가능성 담론을 동시에 강화합니다
문화적으로 아이스크림은 ‘환대(hospitality)’의 일부로 받아들여집니다 여름 저녁 노을이 질 무렵, 가족들이 해안 산책로에서 아이스크림 콘을 손에 들고 담소를 나누는 풍경은 낯설지 않습니다
라마단 기간 단식을 마친 뒤(이프타르) 가벼운 디저트로 소르베를 나누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즉, 아이스크림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모로코인의 일상 리듬과 감정에 닿아 있는 문화적 매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