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맛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아이스크림 문화
브루나이는 동남아시아 보르네오섬 북부에 위치한 작은 술탄국이지만, 그 음식 문화는 생각보다 깊고 다양하다 특히 말레이 문화와 인도네시아, 중국, 그리고 영국의 영향이 어우러진 독특한 식문화는 디저트에서도 빛을 발한다
아이스크림 문화 역시 예외가 아니다 예전에는 더운 날씨에 사람들이 코코넛 워터나 빙수 형태의 전통 디저트를 즐겼다면,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현대식 아이스크림’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브루나이의 아이스크림 문화는 ‘전통의 맛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대표적으로 ABC(에어 바투 캄푸르, Air Batu Campur)라는 전통 빙수 디저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아이스크림이 있다
원래 ABC는 얼음 위에 연유, 젤리, 팥, 옥수수, 코코넛 밀크 등을 얹은 브루나이 대표 디저트인데, 최근에는 이를 아이스크림 형태로 발전시킨 메뉴들이 등장했다 예를 들어,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젤리와 옥수수를 올리고 연유를 듬뿍 뿌린 ‘ABC Sundae’는 브루나이 젊은 세대가 특히 선호하는 메뉴다
또한, 이슬람 문화권인 브루나이에서는 ‘할랄(Halal)’ 인증을 받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대부분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돼지고기 유래 성분이나 알코올을 사용하지 않으며, 유제품 역시 현지 이슬람 협회의 인증을 받은 안전한 원료를 쓴다
이러한 신뢰성 덕분에 가족 단위 고객층이 많고, 아이들도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가정형 아이스크림 문화’가 자리 잡았다 매장 곳곳에는 인증서가 비치되어 있고, 직원들은 알레르기 유발 성분 안내에 적극적이다 이는 디저트를 ‘누구나 함께 즐기는 시간’으로 만든다
최근에는 수도 반다르스리브가완(Bandar Seri Begawan)을 중심으로 ‘젤라토 카페’와 ‘수제 아이스크림 숍’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전통 재료를 활용하면서도 유럽식 감성을 결합한 메뉴를 선보이며, 브루나이의 더위를 달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점포 디자인은 밝은 우드 톤과 그린 포인트 컬러를 쓰는 경향이 강하고,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진 뒤 가족·친구와 함께 들러 달콤한 한 스쿱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풍경이 흔하다
브루나이 로컬 카페에서는 토핑 선택 폭이 넓다 옥수수·그라스젤리·팥은 기본, 땅콩 크럼블과 코코넛 플레이크를 추가하면 전통 맛의 밀도를 높일 수 있다

코코넛과 판단의 향 — 대표적인 아이스크림 재료
브루나이의 아이스크림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재료가 바로 코코넛(Coconut)과 판단(Pandan)이다 코코넛은 동남아 전역에서 흔히 사용되지만, 브루나이에서는 특히 디저트 전반에 걸쳐 깊숙이 자리한다
코코넛 밀크는 부드럽고 진한 질감을 주며, 아이스크림 베이스에 사용하면 우유보다 더 풍미가 진하다 또한 코코넛 속살을 갈아 넣어 만든 ‘코코넛 크림 아이스크림’은 크리미하면서도 열대의 청량한 향을 전해준다 여기에 팜슈거 혹은 굴라 멜라카(Gula Melaka)를 더하면 카라마멜라이즈드 풍미가 살아난다
판단잎은 ‘동남아의 바닐라’라 불릴 만큼 향긋한 녹색 향을 내는 재료다 브루나이에서는 판단을 사용한 디저트가 매우 많다 ‘케익 랩스’나 ‘쿠에 세리 무까(Kueh Seri Muka)’ 같은 전통 간식에서부터 아이스크림까지 다양하게 응용된다
특히 판단 아이스크림은 연녹색의 색감이 아름다워 인스타그램에서도 인기다 이 아이스크림은 브루나이 로컬 브랜드의 시즌 메뉴로 자주 등장하며, 부드러운 코코넛 밀크 베이스에 천연 판단 추출액을 넣어 ‘향의 레이어’를 만든다
이 외에도 브루나이에서는 두리안(Durian) 아이스크림, 망고(Mango) 아이스크림, 자크프루트(Jackfruit) 아이스크림 등 열대과일을 활용한 메뉴가 많다 두리안은 ‘과일의 왕’이라 불리며, 강한 향 때문에 호불호가 있지만 브루나이에서는 오히려 그 향이 고급스럽다고 여겨진다
‘두리안 젤라토’는 현지인뿐만 아니라 관광객에게도 인기 있는 메뉴다 반면 망고와 자크프루트는 보다 대중적인 선택지로, 상큼함과 과즙감을 강조하는 소르베(Sorbet) 타입으로 자주 선보인다
현지 브랜드의 성장과 글로벌 트렌드의 결합
브루나이의 아이스크림 시장은 크지는 않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2020년 이후 ‘홈메이드 아이스크림’과 ‘로컬 젤라토 브랜드’가 늘어나면서 지역 브랜드들이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전통 디저트인 첸돌(Cendol)의 요소를 젤라토로 재해석한 메뉴는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SNS 문화의 확산도 성장의 가속 페달이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 ‘디저트 카페 투어’가 유행하면서, 색감이 화사하고 플레이팅이 창의적인 메뉴가 주목받는다
레이어드 파르페 스타일의 젤라토 컵, 콜드 브루 × 바닐라 젤라토 플로트, 차콜(활성탄) 아이스크림 같은 메뉴들은 사진발이 좋고, 고객의 ‘공유 욕구’를 강하게 자극한다
아이스크림이 전하는 ‘열대의 여유로움’
브루나이의 아이스크림을 한 입 먹으면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단맛이 아니다 그것은 ‘열대의 여유로움’이다 브루나이는 오일 머니로 부유한 나라지만, 국민들은 대체로 여유롭고 가족 중심적인 삶을 즐긴다
오후에는 카페에서 친구와 차를 마시거나, 쇼핑몰 푸드코트에서 아이스크림을 나누는 모습이 흔하다 이러한 일상 속의 디저트 문화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행복의 표현’이다
브루나이 아이스크림은 대체로 과하지 않다 너무 달지 않으며, 천연 재료를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만들어진다 코코넛의 고소함, 망고의 달콤함, 판단의 은은한 향, 그리고 두리안의 강렬함까지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브루나이만의 기후와 정서를 닮았다.